Wednesday 16 February 2011

The Golden Notebook


레싱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벌써 아주 오래된 옛날로 느껴지는 2007년과 2008년 사이의 겨울이었다. 한 달 여정을 꾸리면서 겨우 작은 책가방 하나에 얇은 옷 두서너개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이 책을 책가방 속 가장 무거운 짐으로 골라 넣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사람들로 빽빽하던 그 큰 서점에서, 한 학기동안 교과서 사며 모은 쿠폰을 탈탈 털어 쓰면서 어렴풋이 알아듣는 스웨덴어가 즐겁던 때였는데.

1크로나 짜리 비행기를 타겠다며 몇 번의 밤을 꼬박 세웠던 여러 나라 여러 도시의 공항들에서, 문 닫는 줄도 모르고 조용하다며 좋아하던 기차역에서, 한밤중의 24시 맥도널드에서, 쫓겨난 길거리에서, 이 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잠 잘 곳을 찾아 벤치에서 벤치를 전전하던 그 버스정류장 한 귀퉁이,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던 어떤 여자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도시들과 이 책의 기억들은 이렇게 이어져 있다. 여러 사람에게 속고, 따지고, 도망가고, 이 나라에선 비올 때 이 나라에선 눈올 때 길바닥에서 울음을 쏟아내면서도 무서울 것 없는 것처럼 쏘다니던 때였다. 그 때는, 내 안에 어떤 힘이, 있었던 것 같다.

늘 머리 맡에 두었지만 다시 펼쳐보지는 않았던 이 책을, 어제 문득 꺼내보았다. 주인공의 이름도,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귀퉁이마다 작게 표시해놓은 화살표들을 따라가다보니, 그 때 좋아했던 문장에 지금도 마음이 울리더라.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 이 블로그 제목만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기억을 정리하고 싶었다.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그 해 여행의 유일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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