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1 February 2011

트라우마, 플레시 백, 앎

나는 나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이 '알고있다'는 감각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플레시 백을 줄이는 데에, 플레시 백이 주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기억을 끌어내고, 고통과 대면하고, 그것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공유해 가는 증언 공간이 생각보다 미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앎'이 '이해'로, '이해'가 '치유'로 당연히 이어질 거라고 믿는 것은 제3자의 입장에서 경험을 다루는 자의 오만 아닌가.

플레시 백 되는 것이 차라리 어떤 장면, 어떤 상황이었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까. 내 속에 막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하나의 사건인 줄 알았다. 그리고 계속 출몰하는 그 장면을 지우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포기하지 말고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고, 문이 열리고 사후적으로 조작된 기억이 나를 살릴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예정된 결과는 계속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적된 외상은 사건, 장면만이 아니라, '감정에 사로잡힌 몸'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가슴과 목의 통증과 막힘이 먼저, 그리고 사건과 장면이 나중에 출몰한다. 막힘과 벅차오름이 공존하는 감정적인 몸이 점점 일상적인 상태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에 대한 강박도 심해져 간다.

문제는 내가 이 트라우마의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다고 여전히 생각하는 데에 있는 것일까. 나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를 막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되새겼던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말이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든 끊어내야 한다는 감각, 끝낼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낀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답답함과 괴로움에, 내가 나를 해석하는 오만을 다시 부린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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