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 February 2011

물성(物性)

마음에 어떤 열정도 일지 않는 시간은 마주하기가 매우 당혹스럽다. 먹먹한 감정을 눈치채는 것이야말로 내가 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서 '책의 물성'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직접 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야 거기까진 모르겠지만, '자료의 물성'에 대해서는 조금씩 떨림을 느끼던 중이었다. 누렇게 낡아 곧 찢어질 것 같은 종이, 낯선 글자와 낙서들이 좋았다. 세상 그 어떤 물체보다, 귀퉁이마저 빼곡하게 낙서로 채워진, 그 더러운 종이들이 좋았다. 11월, 그 가을은 시간을 손으로 만질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였던거다. 단지 그 종이를 찾고/보고/만지고/느끼는 것만 좋았을 뿐이었던 거다. '떨림'이라는 건 그런거다. 아니, '물성'이라는 게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래서 그 떨림을 즐기고 물성을 좋아하려 할수록 내용을 들여다보기는 겁나는.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떨림은 사라지고 물성 자체의 아우라는 없어지니까.

공간이 달라졌고, 계절이 다르고, 검색 결과가 시원찮고, 원문이 아니라 글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뭉개진 복사지들만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란 거다. 아후, 그래서 내가 글러먹었다는 결론을 나더러 쓰라는 거냐 지금!

떨림과 물성을 찾아헤매는 내가 너무 비루하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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