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9 July 2012

Golden age thinking

나도 내가 연구하는 시대로 시간여행을 다녀온다면 마성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낭만에 잠시 빠졌다가, 오우 절대 가고싶지 않다. 전쟁터에 가고싶진 않아... 아닌가... 갈만 하려나...

Wednesday 27 June 2012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지난 기억을 뒤적거리다가 작년에 쓰던 다이어리를 열었다. 첫 장은 2010년 12월인데, 이 말을 적어두었더라.

"2010년이여, 잘 가라! 다시는 비슷하게라도 오지 마라!"

김별아 작가가 한겨레에 쓴 칼럼의 일부였다. 2010년엔 지우고 싶은 기억이 많았고, 2010년 12월엔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었다. 다시, 다이어리를 장만해야겠다. 스마트폰으론 부족하다. 오늘따라 잠이 오질 않네.

Saturday 23 June 2012

지침도 병이라.

목이 아파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집이 코앞인데 왜 가지를 못하니 상태로 연구실 삼선슬리퍼를 끌며 병원에 갔다. 용건만 간단히 친절하신 선생님은 "지쳐서 그래요" 라며, 밤새지 말라 하셨다. 으으. 현실성 없는 주문이지만 누군가 그 한마디 던져준게 참 고마웠다.

Wednesday 20 June 2012

2012.6.20.

1. 사소한 것으로부터 사소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2.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는 건 중요한 일. 3. 해야할 일은 그때그때 바로바로. L시에 가고싶은 오늘만큼은 금욕적인 메모.

The Machiavellian Moment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기려니 바뀐 포맷에 적응을 잘 못하겠네. 제목을 어떻게 입력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한참을 헤맸다. 앞으론 더 많은 것들을 기록해야지.)

이번 학기 읽은 책들 중 가장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읽는 과정에서의 정신적 고양과 영감, 그리고 책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한 삶의 많은 부분들까지. 그럼요, 그 순간들은 함께 살아가는 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넘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맨 손으로 살 수 없어 장치들을 동원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지요. 그 장치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요.

'living through'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들을 'living with'로 바꿔나가고, 또 그걸 '살아낼 수 있게' 된 내가 오늘만큼은 대견하다고, 고생했다고, 상담사 대신 도닥여줘야지. 라고 하려니 밤새고 있는게 함정인가. 이제 세상과 나를 고민하며 엘리아스를 읽어야겠다. 무식을 면하라고 읽는 모든 책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훈훈한 세상 이야기처럼 읽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이런게 고전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좀 올드해졌나 싶기도 하고.

Monday 13 June 2011

등교길은 산길인데, 중간쯤 오다 보면 꽤나 넓은 공터가 있다. 가끔 주차된 차들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한데, 딱히 어떤 용도로 쓰였던 기억은 없다. 그런데 3~4주 쯤 전인가, 등교길에 보니, 그 자리에서 양봉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꽤 많이 다니는 길이고, 바로 옆은 (아마도) 6차선(으로 기억하는) 도로인지라, 매일 그 길을 지나면서 '어쩜 저기에서 양봉을 할 수가 있어?' 라고 구시렁댔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벌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고, 인도 위에는 사람들에게 밟혀 죽은 작은 벌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그러다 일 주일쯤 지났을까, 문득 돌아보니 벌통들이 보이지 않았다. 벌통들을 싣고 왔음이 분명한 트럭과, 쬐약볕 아래에서 온 몸을 비닐로 무장한 아저씨들도 없었다. 그제서야 문득,

"봄도 한철이지만, 꽃 피는 시기는 더 짧은 철이구나."

싶었다. 봄은 갔고, 꽃 피던 시기는 지난지 더 오래 되었다. 그 뒤로도 가끔 그 길엔 집을 찾지 못한 작은 벌들이 아주 천천히 날아 다녔다. 그리고 여전히, 인도 위로는 벌의 시체자국이 선명하다. 그 자리에 꽃이, 벌이, 벌집이 있었다는 건,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건, 인간사로 치면 '폐허'라고 할 수 있음이 분명한 흔적들로만 확인된다.

Friday 15 April 2011

오늘

새벽까지 잠을 못잤다. 멍하게 앉아있다가 겨우 잠이 든 것 같았는데, 꿈에서 "안경 끼니까 못 알아보겠어"라는 말을 듣고 깨어났다. 머리를 질끈 묶고 앉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미 지쳐 나가떨어진 마음 상태를 확인해 가던 차에 국기원 쌤의 전화를 받았다. 지친 마음이 아닌 쾌활한 목소리의 내가 "그럼 한 시간 뒤에 갈게요~^^"라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의 환승센터는 너무 복잡했다. 버스번호에 맞는 정류장을 못찾아서 결국 좌석버스 대신 시내버스와 택시의 조합을 선택해야 했다. 처음 가는 것도 아니건만, 다른 경로를 택하면서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탓이었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목마다 차가 막혔다. 얼른 일을 끝내고 쉬고싶은 생각 뿐이던 지친 마음의 내가 그냥 돌아가자고 몇 번씩이나 속삭였다. 그때마다 내 안의, 어른인 척 하는 모범생이 원래 다 이런거니까 그냥 참으라고 다독였다. 정말 지랄맞고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손끝 한 마디가 두껍게 칠해진 하얀 장갑을 끼고 문서고를 뒤졌다. 페인트칠 두께만큼 두꺼워진 손끝으로 착착 넘어가는 종이의 감촉과 소리가 경쾌하다고 느끼다가도, 자주 멈춰,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답을 물었다. 나와의 통화에서도 늘 경쾌하던 담당선생님의 활기찬 전화 목소리에 맞춰, 원래 찾으려던 것이 아닌 문서들에 더 많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눈을 깜박이며 스며나오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나는 다시 정말 미련하고 지랄맞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부족한 잠을 좀 채울까 했는데, 얼핏 들었던 잠이 딴 생각에 깼다. (잠에서 깨어나서 생각한 것도 아니고, 생각 때문에 잠에서 깨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번에도 공모에서 탈락한 걸 확인했다. 요즘은 왜 맨날 떨어지는거지, 생각하다가, 아, 선생님과 신청한 건 안떨어졌구나 생각이 불쑥 났다. 정말 지랄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