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1 September 2009

마음이 쓰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 때도 이렇게 배가 아팠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어떤 일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시작하는, 그 엄청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배를 앓았다. 점점 푸르러지는 나무들 밖에는 보이지 않는 병실에서 이틀을 못참고 도망쳐 나오던 2005년 초여름의 한 날과, 고대의 서늘한 건물들 속에서 말보로와 던킨 커피를 벗삼아 세상의 한 귀퉁이를 잘근잘근 씹어대던 2007년 초의 한 겨울날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스물 셋 혹은 넷 혹은 다섯인 이 순간에, 내가 그러하듯 '우리' 모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다. 누군가는 명령과 복종의 언어를, 누군가는 비판의 언어를, 누군가는 수용의 언어를. 그리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지우고, 누군가는 다시 쓴다. '여느 선배가 되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던, 그 핑계로 자주 만나 마시고 피우고 울고 깔깔거리던 '그들'의 언어가 또 다른 언어들로 흩어진다. 공유하는 게 더 많은 줄 알았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거울상 삼아 이야기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계를 흡입한다는 것. 새로운 문법을 배우고 익혀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기. 그래서, 얼마나 달라질까. 그렇게 달라지고 나면, 너는 나를 그리고 나는 너를 그 이전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 기억들을 기억은 할 수 있을까. 그 기억들을 말하는 서로의 언어가 달라지면, 그 기억도 결국 달라지지 않을까.

내가 여느 선배도, 후배도, 동기도 될 수 없음을 확인했던 그 묵직했던 2007년 초의 또 다른 한 겨울날 들었던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많이 웃는다고, 편안해 보인다고, 좋아보인다고, 했던 그 흩어진 단어들을. 그런 단어들이 과거로부터 들려올 땐 결별과 단절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도 모른 채 긍정했던, 그 작은 커피가게 속의 나 또한 기억하고 있다. 그 곳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하루하루들이 너무나 행복해 들떠있었던 나를.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도 많이 웃었으면, 편안해 보였으면, 좋아보였으면. 많이 배우고 많이 달라진 나를 내가 여전히 좋아할 수 있었으면. 영 쓰디 쓰고, 깔깔하고, 푸석푸석한 마음이었던 2009년도 끝나가고 있다.

Tuesday 1 September 2009

20090831_기억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낯익은 기계음이 들렸다. 문득 그곳의 기계음을 기억해냈다.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존재하며, 길을 건너고자 하는 모두가 눌러야만 길을 건널 수 있는 그곳의 장치를. 기억은, 어떻게 호출되는 걸까.